"비리 덮으면 그만"…새마을금고가 '그들만의 세상' 된 이유 [새마을금고 대해부②]

입력 2023-06-19 07:39   수정 2023-06-19 15:46

이 기사는 06월 19일 07:3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새마을금고는 언뜻 보면 가장 민주적인 조직이다. 지역 거주자라면 누구나 금고의 회원이 될 수 있고, 출자금액과 관련 없이 1인 1표를 행사할 수 있다. 총회에서 지역 금고 이사장을 선출하고, 이사장은 중앙회장을 선출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함정'이 있다. 회원 300명 넘는 지역 금고는 회원 총회 대신 대의원회로 갈음할 수 있다. 그들만의 세상이다. 이사장은 사실상 '무제한 연임'을 누렸다. 중앙회장은 이사장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더 공고한 세습을 약속했다. 박차훈 중앙회장도 2018년 '비상근 이사장 연임 제한 폐지' 등의 공약을 앞세워 당선됐었다. 표면적으로는 '민주'를 내걸었지만 실질은 '독재'에 가까운 조직이다.

새마을금고를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는 본질적인 이유다. 비리 유형도 '구시대적'이다. 반세기 전 새마을운동 시절에나 가능했을 것 같은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가 터져도 금방 덮인다. 자산 284조원을 굴리는 서민 금융기관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자체적인 정화 기능은 작동하지 않고, 행정안전부의 관리 감독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새마을금고법 허점 뚫고 구축한 '종신 권력'
이런 구조적인 독재 체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교묘하게 구축돼 왔다. 일부 지역 이사장들은 새마을금고법의 허점을 악용해 무제한 연임으로 '종신 권력'까지 행사했다. 새마을금고법에선 이사장 4년 임기를 2회 연임해 최대 12년 임기를 보장하는데, 중임엔 제한을 두지 않는다. 임기만료 전 사직 후 재출마하는 식의 꼼수로 임기를 계속 늘려나갈 수 있었다. 이사장으로 한번 선출만 되면 이런 식의 무제한 연임을 할 수 있으니 사실상 '종신 권력'이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민간 금융기관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횡령·배임·갑질이 반복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동안 중앙회는 방관했다. 지역금고에 대한 감독권한을 가진 중앙회는 무대응 혹은 경징계가 상당수였다.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더더욱 그랬다고 한다. 내부통제를 기대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새마을금고는 중앙회가 지역 단위 금고들을 지휘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지역 금고를 총괄하는 이사장이 직접 경영을 하는 체제다. 원칙적으로는 중앙회가 금고에게 시정명령, 관계임원 개선, 직무정지를 내릴 수 있지만 실제 중징계로 이어진 사례가 드물다. 감사에 착수해도 직접 징계가 아닌 권고 수준의 문책 지시에 그치는 수준이다.

수년 전 서인천새마을금고 이사장은 여신업무 담당 직원들에게 자신과 친분이 있는 특정 법무사와의 독점 거래를 강요한 사실이 알려져 사임했다가 다시 이사장에 입후보해 당선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대의원과 VIP 고객 접대를 위해 직원들에게 개고기를 직접 요리하게 했다가 직무정지 처분이 내려졌지만 재복귀해 당시 문제를 제기했던 직원 7명을 해고했다. 부당해고 논란으로 당시 중앙회에도 책임론이 제기됐다.

임원에 대한 제재 근거가 약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일이 많았다. 2020년 서울 한 금고에서 한 전무가 권한없이 채무 지급보증서를 작성·날인하는 업무상 배임으로 28억원의 손해를 입혔지만 내부 징계조치는 감봉 3개월에 그쳤다.

직원들 비리에 대한 징계가 가볍다 보니 부정 부패에 대한 경각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안부가 정기감사에서 "새마을금고는 자체 검사 결과를 보고할 때 직원 문책사항 항목을 넣어서 관리해달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경영진 사익추구 여전히 못 막는 금고법
새마을금고 병폐를 둘러싼 목소리가 높아지자 행정안전부가 내놓은 금고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다. 무엇보다 이사장 자격요건을 신설하고 편법 연임을 제한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행안부 장관이나 중앙회장에게 개별금고 임원을 다른 금융기관과 동일 수준으로 직접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하지만 허점은 여전히 많다. 무엇보다 새마을금고는 주식회사와 달리 출자자의 감시 유인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경영진이 금고 출자자의 이익에 반한 행위를 했을 때 이를 견제할 장치가 미약하다는 얘기다. 구시대적 비리를 넘어 경영진과 금고의 이익충돌 사례를 집중 감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새마을금고법에는 임원의 이익충돌을 규율할 만한 규정이 없다. 임원에 대한 제재는 경업자의 임직원 취임 금지(제24조)가 전부다. '금고를 위해 성실히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성실의무(제25조)는 있지만 상법상 요구되는 충실의무(상법 제382조의3)는 없다. 충실의무는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법인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할 것을 강제하는 조항이다. 성실의무만으로는 개별 금고와 조합 전체에 부실을 야기하는 영업행위를 막기 어렵다는 우려가 크다.

실제로 특정 운용사에 대체투자 자금을 몰아줘 이익상충 논란이 자주 벌어지지만 내부에선 별다른 문제로 인식되지 않지 않는다. 대체투자 '큰손' 새마을금고는 일반 금융회사과 비교해 투자심의 과정이 엄격하지 않아 임원 입맛대로 출자하는 일들이 있어왔다.

중앙회 신용공제사업 대표는 과거 자신이 일했던 아이스텀(현재 토닉PE)에 케이뱅크 위탁운용사(GP) 자리를 지원하면서 이해상충 논란이 제기됐었다. 부동산 투자도 지원했다. 대전 둔산동 홈플러스 부지 오피스텔 개발 사업에서 아이스텀에 900억원을 출자해줬다. 작년 국정감사에서도 '자금 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됐지만 아무런 처벌도 뒤따르지 않았다.

다른 상호금융 조직들도 별도의 충실의무가 명문화돼있진 않았다. 하지만 민법과 상법에서 일부 조항을 준용해 이사의 부정행위나 해태를 사후적으로라도 처벌할 수 있게 했다. 농협·수협·산림조합에 적용되는 신용협동조합법에선 상법 제399조를 준용해 임원의 책임 처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 회사에 연대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감사가 임무를 해태했을 때 함께 책임을 묻는 조항(상법 제414조)도 마찬가지다.

수협에 적용되는 수산업협동조합법상 이사의 부정행위에 따른 해임 조항(상법 제385조 준용) 역시 새마을금고법은 준용하고 있지 않다. 이사가 그 직무에 관해 부정행위 또는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한 중대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주총회에서 그 해임을 부결한 때에는 1개월 내에 해임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주무부장관과 중앙회 회장이 직접 직무정지를 명할 수 있는 조항에 충실의무가 추가로 인정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새마을금고법 제79조의4에 따르면 중앙회 또는 금고 임직원이 형사 기소됐거나 임원이 성실의무(제25조)를 위반했을 때에 직무정지를 명할 수 있다.

새마을금고 투명성을 높이려면 국회에서 적극 나서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그동안 새마을금고 고위층은 정치권을 등에 업고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일이 많았다. 한 금융 전문 변호사는 "새마을금고 비리가 구조적으로 근절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 중에 하나는 정치권과 한배를 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과거에도 새마을금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가 있다가 국회에서 시대를 역행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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